정말 힘빠지게 합니다.
아래 글을 읽으며.. 정말 외 내가 이 더러운 세상을 살고 있을까? 장애인으로 태어 났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글은 시각장애인 bbs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정말 읽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찢어질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외 우리는 일케 차별 받아가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제목: 마포대교에서 4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께서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이땅에서 살아간다는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서러운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주시면서 읽어주셨으면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며 힘겹게 펼쳐지고있는 생존권 즉 안마업권 회복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가 얼마나 몸부림치고있는지에 대하여 간단하게 사실에 입각하여 적어보고자합니다. 7월11일 집에서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해피콜을 불러 약속된 마포대교로 출발했습니다. 비온뒤의 오전공기는 상쾌한 기분을 안겨주었습니다만 약속장소인 마포대교로 가까이 갈수록 머리속은 혼란해지고있었습니다. 그동안 5월25일 헌재의 위헌판결 이후 5월26일 안양시 평촌에 위치한 보건복지부앞에서 시작되었던 집회가 벌써 50여일간의 고통스러웠던 집회를 뒤돌아보며 그동안 두분의 죽음과 9분의 한강에 투신했던 일들 또한 집회에 연일 참여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생사를 알수없는 투병중이신분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언론매체와 인터뷰하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되살아나며 눈물이 흘렀답니다. 그리고 단식을 같이하던 동지들의 힘없는 목소리와 구급차에 탈진이나 저혈당쇼크로 쓰러진 동지들을 태워보낼때의 참담함과 울분 그리고 여의도 국회앞에서 연행되어가던 74명의 동지들 그날 분노하다가 쓰러졌던 나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이 놀랄까봐 아빠의 친구가 다쳐서 병원에 가봐야한다며 병실에 찾아와 울먹이던 아내의 눈물어린 목소리 모든 기억들이 뒤죽박죽 튀어나오며 눈물과함께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꼈답니다. 택시기사님의 걱정어린 말에 고마움을 느끼며 마포대교의 남단끝에서 조금 떨어진 엘림주차장에 내려 대기중인 동지와 만나 다른 동지들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오전 11시가 조금 안되었을 무렵 마포대교에 도착했다는 동지들의 전화를 받고 바로 마포대교의 교각을 내려가기위한 사다리가 있는곳을 향하여 동지들의 팔을잡고 뛰다시피하여 갔더니 벌써 경찰들과 동지들이 옥신각신 다투고있었답니다. 경찰들은 왜 하필이면 다시 마포대교로 또 왔냐며 교각으로 내려가는 동지들을 만류하고있었고 이미 동지들중 일부는 교각의 직각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잇기도하였답니다. 도둑놈도 턴집을 다시 털지 않는데 이거 너무하는거 아니냐며 경찰들은 완강하게 나머지 동료들을 막으려했고 어느새 불렀는지 견인차가 도착하여 동지들이 타고온 승합차를 강제 견인하려하고있었습니다. 두대의 승합차중 한대의 차량 열쇠를 경찰이 빼앗아간 상태였고 누군가가 우리차를 견인하려한다는 말에 몇명의 동지들이 차를 보호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한동안 마포대교를 놓고 경찰들과 동지들의 완강한 실랑이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오후 1시쯤되면서 일단 실랑이는 소강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대신 전과같이 전경버스가 우리 승합차 앞뒤에 배치되었고 우리는 가져간 현수막등을 걸며 경찰들에게 다시 찾아온 이유를 차근 차근 설명을 할수 있었습니다. 6월22일날 유시민 장관이 무자격 무허가 업소를 안마시술소로 유권해석하여 행정적으로 단속해주겠다는부분의 약속이 아직 실천되어지지않아 다시금 그 약속의 장소인 마포대교를 찾아오게되었다는 설명과 마포경찰서에 다시금 누를 끼치게되어 죄송하다는 말과 생존권 회복을위하여 부득이한 일임을 양해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지난번에 편의를 보아주었더니 다시금 찾아왔는가본데 이번에는 그렇지못할것이라며 완강한 태도로 나오고있었습니다. 물론 저희도 충분히 이해는 할수 있는 부분도 다소 있기는했답니다. 마포대교에서 25일간 시위를하다가 해산한지 3주만에 다시 찾아왔으니 반가울수는 없었겠지요. 경찰들과 우리는 다시금 늘 있었던 전과같은 자리에서 전과같은 자세로 자리잡은채 있었고 일부 동지들은 백령도에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하는 안마봉사활동때문에 4명의 동지들이 떠났답니다. 그후 시간이 얼마되지않아 한사람이 화장실을 간다며 약시자의 안내를 받고 시민공원쪽을 향해 걸어갔다가는 얼마 안있어 화장실을 못가게한다며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경찰측에 생리적인부분은 처리가되어야하는거 아니냐고 항의하자 지시이기때문에 하는수 없다는말이었고 좀더 강력하게 항의하자 화장실 가고싶으면 가라 대신 다시 시위장소로 돌아올수는 없다는 기막힌 말을 하는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설명을하고 이해를 시키고 이것은 우리가 불법시위라하더라도 생리ㅣ적 현상가지 막는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아니냐며 화장실은 자유로이 다니게해달라는 요청을 거듭했었습니다만 일관된 그들의 대답속에 다시금 실소를 머금고말았답니다. 저녁시간이되어 음식을 들여오려하자 음식물까지 들여보내줄수없다는 말에 우리는 흥분할수밖에 없었답니다. 음식물까지 줄수없다는것은 굶다가 스스로 지치면 나가겠지하는 생각으로 아마도 지시가 내려진듯하였고 화장실 이용에 관한것과 음식물을 넣어달라고 다시금 부탁하자 경찰의 입에서는 교각으로 내려가 거기서 용변을 보라는말과 음식물은 절대안된다고 말을하고는 돌아가버렸답니다. 교각으로 내려갈려면 10미터가 넘는 직각으로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하는데 아마도 경찰관들은 시각장애인이라는 특수한 입장을 생각하지못했나봅니다. 약시자들중에서도 오르내리기를 힘겨워하는 직각사다리를 전맹들에게 내려가라니 그렇게 배려없는 말을하는것에 다시금 실망스러웠답니다. 실지로 동지들중 두명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것에 공포를 가지고 있었기에 해산하는날 아침까지 참다가 결국은 힘겹게 용변을 처리하는 사태까지 있었답니다. 잡다한 일과들이 끝나고 밤에 잠을 청하려하는데 이불이 하나도 없는것을 확인하고 왜 이불이 없느냐 물어보자 이불도 들여보낼수 없다고하였답니다. 그래 어차피 편하게 있을려고 온것이 아니니 악조건속에서 버텨보자는 오기가 생겨나며 원한다면 철저히 처참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라는 투지가 생겨났습니다. 차에서 돗자리를 꺼내 반으로 접어서 한쪽은 깔고 한쪽은 덮고 베개는 생수병을 베개삼아 피곤한 하루를 마포대교인도에 눕혔답니다. 얼마를 잤을까 누운지 얼마안되어 빗방울이 한두방울 얼굴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피곤한 육체는 본능적으로 돗자리를 머리끝가지 뒤징어쓰고보니 발끝에 비가 떨어집니다. 그래도 얼굴보다는 발끝에 빗방울이 떨어지니 잠을 청할수는 있었고 빗방울은 점점굵어지기 시작하더니 멈추었다가 잠을 한참자고있는데 갑자기 얼굴에 물을 퍼붓기 시작하는것이었습니다. 잠결에도 강제 진압을 시작할려고 물을 뿌리나보다하며 일어났더니 물을 뿌리는것이 아니라 비가 퍼붓기 시작하는것이었고 이미 돗자리안에는 물이 고여 털어내고 다리 난간에 걸쳐놓고는 우비를 챙겨입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비바람과함께 천둥번개는 공포감마저 느끼게하고있었습니다. 그 비람속에서도 교각을 내려가는 사다리를 지키려는 동지들의 의지는 모진 악천우속에서도 전방의 경계를 철저하게 지키는 보초병의것 이상으로 숭고해보였으며 반드시 이번 투쟁에서는 속지않고 승리할수 있을것이라는 신념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손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제법 따끔 따끔하기까지할정도로 굵고 강한 비바람을 우비로 무장한채 온몸으로 비바람을 맞았답니다. 마포대교의 인도에 물이 고이고 동지들의 마음에는 한이 맺히고있었습니다. 모진 새벽은 밝아오고 비가 얼마나 더올것인가 가져간 소형 라디오를 들으며 끝이 없을것같은 빗속에서 한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며 몸이 떨려왔답니다. 아침이되자 바람이 차가워지며 체온이 많이 떨어진듯했습니다. 승합차에서 잠들었던 동지들이 미안해하며 밖으로 나와 차에들어가 좀 쉬라합니다. 차안에 들어와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들었습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회원동지들을 오지말라고했다는 누군가의 말에 잠이 깨어 나가보니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지나가는 행인도 없이 차량들만 빗길을 달려 어디론지 무심하게 지나쳐가버리고만 있었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보고 지나쳐갈까 아니면 앞만보고 못본채 지나갈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비에 젖어 잘 빨리지도 않는 담배 한개피를 물었답니다. 어느덧 12일의 시간도 흘러 저녁시간이되었고 용변을 해결못한 몇사람들이 힘들어하는것을보고 옆에 있던 동지가 그럼 음식물도 들여올겸 용변을 볼 통도 확보할겸 양동이에다가 한통은 밥을 담고 또 통에다가는 국을 담고 또 한통에 김치를 담아서 들여보내면 음식을 먹고 그 양동이를 용변보는데 쓰면 어떻겠냐고하기에 좋은 생각이라 말했답니다. 그후 한시간이 지날 무렵 자동차의 경적이 울리며 차 한대가 우리 승합차 옆에 멈추었고 음식물이 내려졌습니다. 그 순간 경찰들이 달려와 음식물을 빼앗았고 경찰관의 반말과 함께 소란이 일었습니다. 흥분한 동지를 말려 자리로 돌아왔는데 사이렌이 울리더니 마포경찰서의 경비계장이 여러분들에게 알립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불법시위를하고있음으로 1차 해산을 명령한다는 방송이 나왔도 바로 2분도 안되어 2차 해산 명영 방송이 나왔답니다. 그리고는 경찰들이 소란이 생기는 틈을타서 교각으로 내려가는 사다리를 막아섰고 사다리를 놓고 경찰들과 동지들간 서로 밀치는 소란이 생기고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동지가 사다리로 오르려하자 여럿의 경찰들이 강제로끌고가고있었습니다. 사다리를 보호하지못하면 밑에 내려간 교각의 동지들이 강제 해산되는 상황에서 장마로인하여 많이 불어난 한강의 물속으로 뛰어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다리의 계단을 잽싸게 밟고 올라서려는 순간 두명의 경찰이 거칠게 뒷덜미를 잡아채며 끌고갈려고했고 저는 사다리의 기둥을 붙잡고 버텼습니다만 여럿의 경찰들이 더 합세하여 잡고있는 팔을 무엇인가로 내려치고는 기둥을 놓친 틈을타서 강제로 끌고가려하였고 강제진압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순간이라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경찰들손에서 빠져나오려려 하였습니다. 한참을 몸부림치는데 팔을 잡았던 경찰관이 팔을 비틀었고 경비계장은 그새끼 진상이네 수갑채워라고 연속 경찰들에게 수갑을 채울것을 명하고있었습니다. 수갑을 안찰려고 반항하자 비오는 마포대교의 콘크리트바닥에 쓰러트리고는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졌습니다. 팔을 비틀고 다리를 짓밟고 무릎으로 배 가슴 목등을 짓누르고 악에 받친 저는 경비계장의 집안에 병신이 있다면 이렇듯 무자비한 폭력을 가할수있느냐고 따졌습니다만 그저 들어주는이 하나없는 그저 외로운 울부짖음뿐이었답니다. 그때 교각의 동지들이 강물로 뛰어들 자세로 구호를 외치고있었고 고수부지에서는 동지 한사람이 불어난 강물로 들어가 가슴가지 차는 거센 물속에서 강제진압을 즉각 취소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고합니다. 그리고 고수부지의 집회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 동지들이 모여 강제진압을 철회할것을 강력 요구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짓밟혔는지 기운이 다빠져 잠시 쉬고 승합차로 가려는데 경찰들이 저는 분리를 해놓아야한다며 못가게합니다. 그러자 떨어진곳에 있던 동지가 달려와 차에 가 쉬게할테니 보내달라고하자 가라합니다. 차에 들어와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왜 이렇듯 짓밟히며 살아야하는가 내가 과연 인간의 대접을 받고 사는것인가 장애인의 인권은 존중될수없다는것인가등 울분이 치솟아 오르기에 다시 차 밖으로 나가 누가 내 팔을 비틀고 짓밟고 욕설을 했는지 나오라고하자 경찰들은 태연스럽게 그런 사람 여기는 없다는것입니다. 과연 그들이 내가 비시각장애인이었다면 앞에다 놓고 태연스러운 거짓말을 할수 있을가요? 제가 누구냐고 악을쓰며 나오라고하자 어떤놈이 나와서 이 아저씨 아까부터 왜그러냐며 거칠게 밀어내는것이었고 저는 밀친쪽으로 달려들었답니다. 그러나 드놈을 붙잡기도전에 대여섯의 경찰들이 먼저 나를잡았고 다시금 전보다 더 거칠게 팔을 비틀고 경비계장이라는자는 자신이 직접 도로의 난간 바깥쪽에서 저의 목을 팔로 감아서는 난간에다가 찍어누르는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제압을 하라는 말이야라고 말을 내뱉으니까 폭력은 더 심해지더군요. 가슴은 쿵쾅 쿵쾅 뛰고 숨은 거칠어지고 기운은 빠지고 버스의 엔진소리가 들렸다가 안들렸다가할정도로 탈진해 쓰러져있는데도 빌어먹을 어느 경찰놈이 하는말이 콘크리트바닥에 맨살인 팔을 무릎으로 찍어 누르고있으면서 하는말이 인간답게 대할때 씨팔 가만이 있어라고 말을합니다. 기껏해야 30대나 되었을만한 인간 망종의말이 그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너는 그래 세면바닥에 팔을 짓밟고 있는것이 인간답게 대해주는거냐? 그 어디서 그런 빌어먹을 인간대접 방법을 배웠냐? 니 스스로 생각해봐라 이게 인간대접인가?하며 웃었더니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슬그머니 무릎에 힘이 빠지는것을 느끼고 팔을 뺄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난간에 앉아 있으려니 빌어먹을 경찰 어느놈인가 하는말이 아저씨 힘이 왜 그렇게 좋아요라고 합니다. 비는 쏟아지고 서러워 눈물흘리고 억울해 눈물흐리고 고통스러워 눈물 흘립니다만 그래도 비가 내려주니 눈물 씻겨나가 좋았습니다. 정말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마음이 아팠답니다. 내가 어떤 죄가 있어 그렇듯 폭력을 당해야하는지 당장이라도 진단서를 끊어 고발하고싶었지만 다리를 지키는 동지들이 몇명안되어 나가면 다시 들어올수가 없다는것에 생각이 머무는순간 빠져나갈수가 없었답니다.게다가 경비계장의 진압 시범을 보이며 했던말이 이새끼 입을 찢어버릴까보다하는말이 더더욱 마음에 상처가되었답니다. 저는 경비계장 면담을 요청했습니다만 경비계장이 퇴근했다는말만 반복적으로하고 그럼 불러달라고해도 대답을 하지않고 그러던중 누군가가 버스안에 경비계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버스 안으로 들어가려하니까 문을 닫아버립니다. 문앞에 앉아있으니 뒷문을 열고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뒷문으로가면 앞문으로 오르내리고 마치 어렸을때 동네 아이들이 장님이라고 놀리며 도망다니던때의 기억이 순간 되살아나며 더더욱 울분에 몸을 떨었습니다. 순간 그래 오늘 죽자 죽어버리자라는 생각이들었고 경찰버스와 우리 승합차 사이에 작은 공간이 있어 차도로 나갔답니다. 차도에 나가 찢어진 우비를 벗어버리고 그냥 비를 맞았습니다. 그러고 앉아서 경비계장을 불러줄것을 요구하며 있는데 들은척도하지않습니다. 빗방울이 다시금 굵어지자 동지 한사람이 우비를 가져다주며 입으라하기에 필요없다고 했더니 자꾸만 입으라합니다. 우비대문에 옥신각신하기가 싫어 그냥 걸치고 앉아있었습니다. 기다려도 경비계장은 오지않고 도로의 차량들은 빗물을 튕기며 휙휙 사라져갑니다. 2시간 이상을 차도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는데 다른 동지가 다가와서는 밤 12시가 넘었다며 차안으로 가자합니다. 장애인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이루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야한다. 라는 장애인 인권 헌장의 내용이 과연 이 국가와 사회에 존재할수 있다는 말인가? 그날밤은 정말 미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다시 직각 사다리를타고 밑으로 내려가서는 거칠게 물결치는 한강으로 뛰어들고싶었습니다만은 여러 동지들이 만류하여 다시금 마포대교의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습니다만 도저히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13일의 아침은 고요하게 밝아왔습니다. 어제의 난리로 얻어낸것이 아니 승락받은것이 하루 세끼는 반입시켜주겠다는 것이었고 화장실은 여전히 알아서 해결해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후에 한강의 고수부지에서는 반가운 동지들의 구호소리가 이제는 서글픈 죽음의 장승곡마냥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 구호소리가 없으면 시간이 그 얼마나 더디가는지 지루한 장마철의 비처럼 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답니다. 13일에도 경비계장은 나타나지를 않았고 13일은 덧없이 흘러 14일의 아침은 비가 그친채 밝아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어제 시켜놓은 도시락으로 대신하려는데 다소 쉰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맛을 보니까 별문제는 없을듯하여 먹고는 그동안 비를 맞고 땀도 흘리고 습한 상태에서 젖은 옷을 계속 입고있다보니까 온몸이 끈적끈적하고 가렵기도하고 샤워한번 했으면 하는 배부른 생각이 났지만 그저 거기에서는 희망사항일뿐 화장실을 못가니 씻는다는것은 생각조차 못할수밖에요. 각자 몸에서 냄새가 진동을 하다보니까 서로 머리좀 감았으면 발좀 씻었으면 목욕이나 시원하게했으면 등등의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어딘서가 심각하게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있었답니다. 이것은 몸에서 나는 악취와는 차원이 틀린 그저 많이 맡아보면서 살면서도 그 냄새를 피하고 싶은 바로 그냄새였습니다. 동지 한사람이 교각으로 내려가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다니는 길목에다가 급하ㅐㅆ던지 슬쩍 용변을 보았던가봅니다. 그것을 전맹인 동지가 밟아서 사다리를 타고 위에가지 올라왔으니 손으로 잡고다니는 사다리의 상황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여기저기서 똥냄새난다고 구박을 하니까 그친구 미안해 어쩔줄 몰라하면서 하는말이 오늘 아침에 똥 밟았으니 좋은일 생길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교각 아래에서 잠자던 동지들이 늦게 잠에서 깨어나 난리가 났지요 걸어온 발자구 발자국에서 냄새가 진동하니 줄에 양동이를 매달아 물을 길어서 청소하느라 고생들 하였을것입니다. 그러는 삳이에 오전 11시쯤 갑자기 전경들과 경찰들이 남단으로 북단으로 뛰어다니며 난리가 났습니다. 왜그런가했더니 우리들의 동지들이 남단에서 100여명 북단에서 100여명 정도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걸어오고 있었답니다. 동지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반갑고 힘이 생기던지 정말로 지친 몸과 마음이 힘을 얻을수 있었답니다. 오후 5시쯤되었을까요 보건복지부에 들어갔던 대책위원장님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말이 전해지고 얼마있다가 비상대책위원장님이 보건복지부에서 공문으로 받은것은 무자격 무허가 안마유사업을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하여 안마유사업을 단속할수있는 법안을 상정시키겠다는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산하기전에 해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경비계장이 저의 입을 찢어놓겠다는 말과 폭력을 휘둘었던것에 대한 사과를 받고싶었습니다. 그래서 해산할수가없었습니다. 사다리 위의 난간에 올라가 정식으로 경비계장의 사과를 원하며 1시간이 넘도록 있었습니다만 본인을 나타나지않고 정보과의 과장님 계장님들이 나와서 대신 사과한다는 말만 있었습니다만 저는 그분들에게 사과받을 일은 절대아니고 경비계장의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하였으나 그의 자존심은 비천한 시각장애인 안마사에게 사과를 허락하지 못하는지 끝끝내 나타나지를 않았답니다. 지친 동지들보고 먼저가라며 혼자라도 반드시 경비계장을 만나고 가겠다고 하였지만 동지들이 어떻게 혼자 있게하겠느냐 다같이 있겠다는말에 저의 억울함을 참고 동지들과 함께 대중탕으로 바로 가서 목욕을한뒤 저녁을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여 마시고 몇몇 동지들과함게 다시금 마포대교의 한강고수부지로 내려가서 그동안 대박을 터뜨린 매점앞에 돗자리를 깔고 다시금 소주와 맥주 한잔씩을 더하며 다시는 우리 이자리에 안왔으면 일이 잘 처리되었으면하는 대화를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제가 이렇듯 장문의 글을 올리는것은 다름이 아니라 세계일보 기사와관련하여 인권을 무시하고 폭력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일부 경찰관들의 태도에 다시금 분노를 느끼며 두서없이 이글을 작성했습니다. 실지로 우리가 시각장애인이다보니까 특히 좋은 카메라폰을 가지고있어도 촬영을 못하여 증거를 못남긴다는 현실이 정말 싫습니다. 언제가지나 그들의 교활한 태연한 거짓에 늘 당하고 살아가야하는지 언제나 우리들의 생존권 회복은 이루어질른지 막막하기만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마 업권을 위해 애쓰시는 동지 여러분 힘내싶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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